일상 속 사유

일상 속 작은 우연-잃어버리지 않았지만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다.

코그니티오 2024. 3. 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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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작은 우연

잃어버리지 않았지만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다.

약지에 껴진 반지다.

 

24년 2월 17일, 을왕리로 1박 2일간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짧지만 즐거웠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반지를 뺐다. 

 

24년 2월 18일, 반지를 잃어버렸다. 정확히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분명 어제 반지를 집에서 뺀 기억이 있다. 구체적인 상황까지 기억한다. 집에 도착해서 외투를 벗어 놓은 다음 손을 씻으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비누칠을 하려고 하니 반지가 걸리적 거려서 반지 부분을 신경쓴 채 비누칠을 했다. (반지를 끼고 비누칠을 하면 반지와 손가락 사이에 비누가 끼어 비누 찌꺼기가 남는다. 나는 그 찌꺼기를 무척 걸리적 거려 한다.) 내가 특히 거슬려 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반지를 분명하게 인식했다.

 

 24년 3월 3일 이른 오후, 반지를 잃어버렸음을 인정했다. 바로 전날까지는 분명하게 집에서 반지를 뺀 것을 '인식'했기 때문에 단지 반지를 못찾았을 뿐 잃어버린 것은 아니라고 했다. 여자친구에게도 반지를 인식했던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하면서 분명하게 집에 있는 것이고 못찾는 것뿐이지 잃어버린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3월 3일 아침 데이트를 하기 위해 외출하기 전 나는 문득 반지를 잃어버렸음을 인정했다. 무려 2주 동안 집에서 찾지 못했다는 것은 잃어버렸다고 인정하는 것이 타당할 터.

 

그리고 문제의 그 순간인 24년 3월 3일 18시 40분 경, 놀랍게도 같은 날이다. 바지 주머니에 반지가 손에 걸렸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떤 물체에 손이 닿은 그 순간, 어떤 물체도 아닌 분명히 반지로 인식할 수 있었다. 그 반지다. 2주 동안 잃어버린 반지였다. 놀라서 여자친구에게 언제 넣어 뒀냐고 되물었다. 여자친구는 아니라고 한다. 다시 한 번 서로 놀랐고, 움음이 나왔다. 하지만, 이내 여자친구는 표정이 굳어졌다. 여자친구는 똑같은 반지를 다시 주문해서 이미 배송 중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주문 취소가 가능한지 확인해보았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웃었다. 반지 가격이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었기 때문이고, 이 상황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3월 4일 하루 종일 같은 바지를 입고 데이트를 했다. 데이트를 하러 나가려고 바지를 입은 그 순간부터 주머니에 손을 넣기까지 대략 5시간 넘게 바지 주머니에 손을 안 넣었다는 것도 신기하고, 얼마 전 옷 정리를 했었는데 정리할 때 못 찾았던 사실도 신기했고, 이 바지를 2주 넘게 입지 않았다는 것도 신기했다.(또, 2주 넘게 빨지도 않았다는 의미도 된다.) 참 소박한 우연이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반지를 찾은 상황에서 여자친구가 나한테 물었다.

 

  "왜 하필 오늘 그 바지 입었어? 조거 팬츠 안 입고?"

 

나는 발목 부분을 고무줄로 조일 수 있는 조거 팬츠 같은 회색 츄리닝을 자주 입는데 그날 입은 건 일반적인 회색 츄리닝이었다. 여자친구가 내가 잘 입지 않는 츄리닝인 걸 알고 물어본 거다. 나는 대답했다.

 

  "몰라, 그건 너무 자주 입는 거 같아서 그냥 이거 입어봤어"

 

  "(크게 웃으며) 바보! 정준하 같아"

 

나는 어떤 말인지 이해했다. 무한도전 짝 특집에서 정준하가 정형돈에게 점수를 주는 상황에서 (아마 자기소개에 대한 평가를 말하는 상황이었을 거다.) 6점을 준 이유로 7점은 많은 거 같고 5점은 너무 적은 거 같다면서 말하는 상황이다. 바보 같으면서도 귀여운 상황이어서 큰 웃음을 주었던 장면이다.

 

내가 모르겠다고 그냥 지금 넣어봤다는 대답이 정준하를 떠올리게 했나보다. 우리는 서로 그 상황을 단번에 이해하고 또 웃었다. 그리고, 나는 이 우연한 상황을 기록하기로 생각했다. 참 소박하지만 행복한 상황이어서 두고 두고 추억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