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사유

[일상 속 사유] 추억상자를 열고 나서 l 꾸준함의 가치

코그니티오 2024. 5. 3.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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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작은 리빙박스 하나가 있다. 그 안에는 내가 살아온 흔적들이 있다. 옛 직장 명함과 직장생활을 하면서 교환하며 받은 명함,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던 체크카드와 신용카드, 그동안 찍었던 증명사진, 만료된 여권, 예전에 사용했던 지갑, 과거 내가 끄적거린 흔적이 있는 수첩들,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쓴 편지가 있다. 내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모여 있는 일종의 추억 상자다.

 

한 달간의 여행을 앞두고 여행할 때 쓸 작은 힙색 가방을 가지러 집에 다녀왔다. 집에 간 김에 더 갖고 갈 물건들이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 리빙박스를 열었다.  매년 한 번쯤은 열어봤던 박스라 이미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잘 알고 있는데도 매번 열 때마다 새롭다. 과거의 내가 열심히 끄적거렸던 흔적이 있는 수첩들을 열어 봤다. 여러 개의 수첩들 모두 하나같이 앞부분만 사용되었다. 누가 수첩을 주워서 중간부터 열어보면 새 수첩인 줄 착각할 수도 있다. 수첩에 적힌 내용들을 대강 읽어봤다. 버킷리스트도 적혀 있고, 읽었던 책과 읽고 싶은 책 리스트, 영화 리스트, 나의 목표, 짧은 일기 등 잡다한 내용이 정리되지 않은 채 적혀 있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수첩들은 연초에 샀을 게 분명하다. 

 

그 수첩들을 보면서 '내가 이랬다고?' 하며 실소한 부분도 있었지만 대부분 '열심히 살려고 하는' 의지가 담긴 내용이었다. 열심히 살아서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 감사 일기를 씀으로써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기 위한 노력, 리스트를 만들어 책을 많이 읽기 위한 노력, 열심히 살 수 있도록 동기부여해주는 명언들. 비록 수첩 앞부분만 빼곡하지만 거기 적혀 있는 건 열심히 살기 위한 나의 다짐들이었다. 매년 비슷한 다짐을 하는 것은 이루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수첩의 중간과 끝이 깨끗한 것은 연초의 의지가 연말까지 지속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그 수첩들에 적힌 다짐을 보고 나는 나 스스로가 기특했다. 시간을 1년 단위로 보면 짧은 수명으로 흩어진 의지이지만, '나'의 인생이라는 전체적 관점에서는 '열심히 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 흔적이라고 생각했다.

 

수첩에는 매년 책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고 다짐이 적혀있었다. 그 의지로 책을 읽었다. 권수는 중요하지 않다. 책을 읽었다는 게 중요하고, 매년 책 읽기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다. 매년 운동을 더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의지로 운동을 했다. 원하는 목표 체중은 아직도 못이루었지만 운동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았다.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한 최근, 하루에 꼭 하는 일은 책 읽기, 운동, 글쓰기,  영어공부 네 가지다. 이 네 가지는 열심히 살기 위해 매년 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 왔던 것들이기도 하다. 무의식적으로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해야 할 것을 매년 똑같이 다짐했던 거다.

 

성공하고 싶어서 책, 유튜브를 통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각자의 비법들은 다르지만 하나로 이어주는 가치는 '꾸준함'이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다보면 그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게 된다. 전문성은 차별점이 되고, 차별점은 남들과 다른 강점이 된다. 그리고, 강점은 돈을 끌어당긴다. 즉 한순간 벼락부자가 되는 요행을 바라지 않고 한 우물만 꾸준히 파야 한다. 꾸준함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내가 그동안 꾸준히 해온 것은 어떤 게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딱히 없었다. 그런데 하나 있었다. 우연히 열어본 추억상자 속에서 내가 꾸준히 해왔던 걸 찾았다. 나도 모르게 '열심히 살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누군가는 성과 없이 노력만 꾸준히 하면 뭐하냐고 힐난할 수 있다. 하지만 또다시 난 다짐한다.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할 거고, 그 방법으로 책을 읽고, 운동하고, 글을 쓰고, 여행을 잘하기 위해 영어를 공부할 것이다. 누군가의 힐난처럼 이 방법들은 성과로 나타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일단 믿는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경험들이 언젠간 내 강점이 되어 있을 거라고. 강점이 된 순간부터 성과로 이어질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