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의 판타지 웹툰은 대체로 비슷한 설정을 갖고 있다. 만화 세계관 안에서 가장 강력한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능력의 대부분을 봉인당한 채 과거로 회귀하거나, 최약체였던 주인공이 모종의 능력을 얻고 세계관 내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 소위 먼치킨이 된다. 내 기억으로는 이러한 판타지물의 전성시대를 이끈 건 최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으로도 방영된 [나혼자만 레벨업]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인기에 힘입어 나 혼자 OOO, 탑, 회귀, 레벨 등 비슷한 설정의 웹툰들이 많아졌다. (판타지 웹소설의 웹툰화가 많아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혹자는 이러한 판타지 웹툰 전성시대를 [나 혼자만 레벨업]의 성공 법칙을 활용한 판타지물의 양산이라고도 평한다. 실제로 유사한 설정을 이용한(나 혼자, 레벨, 탑 등의 설정) 웹툰들이 등장했고, 제목에 나 혼자, 회귀, 탑 등의 키워드가 포함된 웹툰들이 많다.
필자도 여러 판타지 웹툰을 즐겨 봤고, 현재도 즐겨보고 있다. 판타지 웹툰들의 공통점은 앞서 말한 탑, 레벨과 같은 설정들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본질적으로 파고들면 하나의 공통된 키워드로 귀결된다. 바로 “성장”이다. 보통 탑을 설정으로 차용한 판타지 웹툰들은 스테이터스창이라는 게임 설정을 같이 활용하기도 한다. 스테이터스창은 캐릭터들의 성장 정도를 지표로서 독자들에게 제공하여 직관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어서 유용하다. 탑은 캐릭터들의 성장을 이끄는 일종의 환경이다. 탑은 주인공에게 적절한 몬스터 혹은 퀘스트를 제공하여 주인공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주기도 하며, 시련을 주기도 한다. 주인공 한 명으로는 클리어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난이도의 몬스터나 퀘스트가 불시에 등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를 맞은 주인공은 죽음 목전까지 이르게 되고 이때 엄청난 성장 즉, 각성을 하게 된다.
비슷비슷한 판타지 웹툰 전성시대 속에서 최근 본 판타지 웹툰 [잔불의 기사]는 매우 신선했다. 쌍둥이 형제 '나진'은 세계관 속에서 100년에 1명이 나올까 말까 한 천부적인 기사(Knight)가 될 재능을 갖고 태어난 반면, 또 다른 쌍둥이이자 주인공 '나견'은 기사로서의 재능은 조금도 없다. 웹툰 초기부터 어떤 무리에 의해 나진이 죽임을 당하고, 나견은 나진의 복수를 위해 나진으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나진은 죽기 전까지 견습기사로서 정식 기사가 되기 위한 수업 과정에 있었으며, 그 과정을 나견이 나진으로서 대신하게 된다. 여기까지의 내용만 보았을 때 판타지 웹툰을 즐겨 본 독자라면 누구나 이러한 전개를 예측할 것이다. "나견도 나진과 같은 재능을 발화하여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기사로서의 성장기". 하지만 [잔불의 기사]는 달랐다. 처음에는 나견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진부한 내용으로의 전개를 예상한다. '나진과 같은 쌍둥이니까 나도 비슷한 재능을 갖고 있겠지' 하며 검술을 며칠간 연습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나견은 전혀 성장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예 못을 박아버린다. 재능을 원석으로 비교하였을 때 나진은 불순물 전혀 없는 순도 높은 원석이라면 나견은 불순물 덩어리라고 표현한다.
이 지점에서 흥미로움이 1차 발화된다. 클리셰적 전개를 펼치지 않을 것이라는 작가의 의지가 표현된 지점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 호기심이 생긴다. 나견은 나진을 대신할 것을 선택했고, 그렇다면 나진이 그동안 모두에게 보여줬던 압도적인 재능을 언젠가는 증명해야 할 것이 뻔할 텐데, 증명의 순간들을 연약한 나견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약간의 스포를 더하자면 '나견'은 무력이 아닌 재능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재능을 이용하여 모든 위기의 순간을 극복한다. 그리고, 나견은 현재까지 연재된 최근 회차(146회 차)까지도 무력으로서의 강함은 여전히 없다.
여러 위기 중 인상적인 부분은 나견이 세계관 최강자이자 황국의 기사인 "순백의 코끼리"를 대면한 순간이다. 순백의 코끼리는 정식 기사 여러 명을 무기도 없이 단신으로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그야말로 세계관의 최강자다. 순백의 코끼리와 나견과 그 무리들(동료, 나견 무리들을 지도하는 정식기사들)이 대면할 때 순백의 코끼리는 이들을 침입자로 판단하고 엄청난 살기를 내뿜는다. (판타지 웹툰의 설정에서 강함의 척도로 흔히 사용되는 그 '기'다.) 나견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순백의 코끼리의 엄청난 살기를 느끼고 몸이 저릿할 정도의 공포를 느낀다. 나견은 살기를 전혀 못 느낀다. 단순히 주인공이기 때문에? 무력과 다른 재능 덕분일까? 아니다. '기'는 고수들의 경지에서 느낄 수 있다. 즉, 나견은 매우 약하기 때문에 순백의 코끼리의 살기를 못 느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또다른 전개가 펼쳐진다. 순백의 코끼리는 나견을 제일 먼저 처치해야 될 강한 적으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살기를 느끼고도(실제로 못 느꼈지만) 태연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건 엄청난 강자가 아닌 이상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견 외 무리 대부분은 순백의 코끼리의 살기를 느끼고 겁을 먹고 100% 이성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는 반면, 나견만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순백의 코끼리의 공격을 한 차례 막기도 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고수들의 경지에서 초보자적인 단순한 행동이 오히려 전략적인 행동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둑이나 체스 같은 전략게임을 할 때 어처구니 없는 한수가 상대방에게 엄청난 패닉을 안겨주어 자멸하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단순한 실수인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이 수에 대해 전략적인 이유와 경우의 수를 고민하지만, 고수들의 경지에서는 나오지 않는 의례적인 수기 때문에 그 실수로부터 시작되는 전략과 경우의 수를 파악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리고 결국 이 수를 읽지 못함으로써 오는 불안과 당황으로 인해 그 판을 망친다. 당구를 즐겨치던 20대 초반 시절, 단골 당구장 사장님이 해주었던 이야기가 있다. 당구 고수들은 가끔 초보자들과도 당구를 친다고 한다. 초보자들은 당구 은어로 '후루꾸'라고 하는 요행을 많이 일으킨다. 고수들은 공의 배치만 보면 금세 길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곧 그 길 안에 시야가 갇혀 다른 길을 볼 수 없다는 의미도 된다. 즉, 초보자들의 요행을 보면서 다른 길을 볼 수 있는 시야를 넓히기 위한 목적으로 초보자들의 당구에도 관심을 두는 것이다.
전략적인 '초보자 같은 요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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